코발트빛 동해와 솔숲, 강릉의 바다·호수·한옥을 잇는 하루





은빛 백사장과 코발트빛 동해를 곁에 두고 안목해변 커피거리에서 잔을 손에 들고 방파제를 걷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해, 솔숲이 깊게 드리운 경포호 둘레를 한 바퀴 돌고, 검은 대나무가 건물을 두른 오죽헌의 옛 한옥까지 이어 보는 강릉 1박 코스입니다. 바다·호수·한옥이라는 세 결이 모두 강릉 시내를 기준으로 동쪽 해안과 그 안쪽 호반에 모여 있어, 차로 이동하면 한 곳에서 다음 곳까지 길게 잡아도 20분 안팎입니다. 한나절 사이에 짠 내 나는 해안에서 잔잔한 석호로, 다시 오백 년 가까운 별당 마당으로 풍경이 크게 바뀌는 동선을 한 번에 묶을 수 있습니다. 아래에서 각 장소에서 무엇을 보고 어떤 순서로 걸으면 좋은지 차례로 짚어 보겠습니다.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리
안목해변 커피거리는 백사장과 방파제를 따라 카페가 줄지어 늘어선 강릉의 대표 해안 산책로입니다. 1980~90년대만 해도 횟집이 많던 평범한 해변이었는데, 이 해변에는 유독 커피 자판기가 많았습니다. 손님을 태우고 온 택시 기사들과 바다를 보러 나온 강릉 사람들이 해변에 늘어선 커피 자판기를 즐겨 찾으면서 지금의 커피거리가 시작되었습니다. 1km 남짓한 구간에 한때 50여 대의 자판기가 늘어섰는데, 자판기마다 원두 브랜드와 설탕·프림 비율이 조금씩 달라 맛이 미묘하게 갈렸고, 그래서 손님마다 단골 자판기를 따로 정해 두기도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2000년대 들어 강릉을 거점으로 삼은 로스터리들이 자리를 잡으면서, 자판기 커피로 알려졌던 이 해변은 원두커피의 거점으로 바뀌었습니다. 강릉 원두커피의 뿌리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곳이 보헤미안과 테라로사입니다. 대한민국 1세대 바리스타로 꼽히는 박이추 선생은 1988년 서울 혜화동에 '가베 보헤미안'을 연 뒤 안암동을 거쳐 강릉으로 내려왔고, 보헤미안 본점은 지금 북쪽 사천 해변 가까이에 자리해 있습니다. 고향이 강릉인 김용덕 대표의 테라로사는 2002년 강릉 구정면에 로스팅 공장과 매장을 열며 강릉을 커피 도시로 끌어올린 또 하나의 축이 되었습니다. 이런 로스터리들이 강릉 곳곳에 본점을 두면서 원두커피 문화는 안목해변을 넘어 시내 골목으로 퍼졌고, 2009년부터는 강릉시가 커피 축제를 열며 '강릉 하면 커피'라는 인상을 굳혔습니다.
거리에 들어서면 메뉴부터 고르기보다, 백사장을 등지고 카페 줄을 따라 한 바퀴 돌아본 뒤 자리를 정하는 편이 좋습니다. 매장마다 내세우는 것이 다르니 걸으며 다음을 눈여겨보세요.
- 원두를 직접 볶는 로스터리 매장 — 입구에서 퍼지는 볶는 향, 진열장에 늘어놓은 생두 자루와 드럼형 로스팅 기계, 산지·로스팅 단계를 적어 둔 원두 라벨을 함께 보면 그 매장이 어떤 커피를 내는지 가늠할 수 있습니다.
- 2층·루프톱 좌석 — 방파제 너머로 수평선이 트이는 자리와 등대·오가는 어선이 보이는 창가. 같은 거리라도 좌석 높이에 따라 시야에 들어오는 바다의 폭이 달라집니다.
- 테이크아웃 위주의 작은 매장 — 잔을 들고 방파제 산책로를 따라 걸을 때 동선이 짧은 곳. 안목항 방파제와 그 끝의 빨간 등대까지 걷는 길과 연결해 두면 한 손에 커피를 든 채로 해안 끝까지 다녀올 수 있습니다.
자판기는 이제 거리 한쪽에 몇 대만 남았습니다. 동전을 넣고 종이컵을 받아 드는 옛 방식과, 로스터리에서 갓 내린 핸드드립을 받아 드는 지금의 방식이 한 거리에서 나란히 이어집니다. 방파제 끝까지 걸으면 안목항으로 드나드는 어선과 등대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커피 한 잔을 들고 해안을 따라 천천히 걷기 좋습니다.
강릉 경포호수 소나무 산책로
경포호는 바닷물과 민물이 섞이는 강릉의 대표 석호로,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둘레길과 자전거 전용도로가 잘 정비되어 있습니다. 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둘레길은 약 4.3km에 이르며, 길은 대체로 낮고 평탄해 오르막이 거의 없습니다. 유모차나 자전거로도 부담이 적고, 길 양옆으로 수령 오래된 소나무와 벚나무, 개나리가 이어져 솔바람과 호수를 함께 끼고 걸을 수 있습니다. 자전거로 속도를 내면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지만, 정자에 올라 호수를 내려다보고 습지 데크에서 걸음을 멈추다 보면 한두 시간은 금세 지나갑니다.
출발 전 한 방향을 정해 두면 동선이 깔끔합니다. 시야가 탁 트이는 호반 구간과 소나무 그늘이 깊어지는 숲길 구간을 번갈아 걸으며, 호수 수면 → 솔숲길 → 가시연 습지 → 경포대 누각으로 이어지는 순서를 따라가 보세요. 호반에는 자전거 대여소가 여러 곳 있고, 산책로와 벚꽃길, 경포대 누각에 오르는 것은 모두 무료입니다.
- 경포대 — 호반 언덕에 올라앉은 누각으로, 마루에 오르면 호수와 솔숲, 멀리 동해까지 한눈에 내려다보입니다. 누각 둘레의 벚나무는 수령 백 년이 넘는 것이 열 그루 남짓 섞여 있어, 봄이면 노거수에서 굵은 꽃잎이 흩날립니다.
- 가시연 습지 — 경포 습지생태공원 일대의 생태 구간으로, 가시연은 7~9월에 꽃을 피웁니다. 나무 데크가 습지 안쪽까지 놓여 있어 물풀과 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고, 습지공원이 끝나는 지점에서는 허균·허난설헌기념공원이 지척입니다.
- 봄 벚꽃 시즌 — 4월 초 경포 일원에서 경포벚꽃축제가 열리며 둘레길이 벚꽃 터널을 이룹니다. 습지광장 주 행사장에는 벚꽃 산책길과 라이트닝 터널, 버스킹 같은 프로그램이 함께 마련되어 해가 진 뒤에도 둘러볼 수 있습니다.
호반을 따라 걷다 보면 솔숲과 수면, 멀리 백두대간 산자락이 한 화면에 들어오는 지점이 여러 곳 나옵니다. 호수 둘레에는 참소리축음기·에디슨과학박물관과 3·1운동기념공원 같은 들를 곳도 함께 놓여 있어, 걸음을 끊어 가며 전시를 곁들이기 좋습니다. 코스 중간에 경포호를 넣으면 안목해변과 오죽헌 사이를 자연스럽게 이어 주고, 자전거를 빌리면 호수를 한 바퀴 도는 데 큰 부담이 없습니다.
강릉 오죽헌 역사 기념관
오죽헌은 조선 초기에 지어진 별당 건물로, 신사임당(1504~1551)이 태어나고 그의 아들 율곡 이이(1536~1584)가 태어난 생가입니다. 본래 조선 세종 때 문신 최치운(1390~1440)이 처음 지은 집으로 전해지며, 이후 아들 최응현을 거쳐 사위 이사온, 곧 신사임당의 외가로 이어지면서 신사임당과 율곡이 이곳에서 태어났습니다. 건물 뒤뜰에 검은빛이 도는 대나무, 곧 오죽(烏竹)이 자라 '오죽헌'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1963년 보물 제165호로 지정되었고, 5천 원권 지폐 뒷면에서도 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관람은 정문에서 중심 건물로 이어지는 축을 따라 걸으며 보면 흐름이 잡힙니다. 살펴볼 디테일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몽룡실 — 1536년 신사임당이 율곡 이이를 낳은 온돌방으로, 용이 문머리에 서려 있는 태몽에서 이름이 비롯되었고 율곡의 어릴 적 이름도 '현룡(玄龍)'이었습니다. 방 안에는 신사임당의 영정이 모셔져 있고, 왼쪽 마루방은 율곡이 여섯 살 무렵까지 공부하던 곳으로 전해집니다.
- 건물의 짜임 — 기둥 위 공포가 주심포에서 익공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양식을 보여 줍니다. 보물로 지정된 까닭도 바로 이 부분에 있으니, 기둥과 공포를 천천히 올려다보며 우리나라 주택 건축의 변천을 읽어 보세요.
- 마당과 기단 — 마당의 폭, 기단의 높이, 처마선과 단청 색을 순서대로 보면 별당의 단정한 비례가 눈에 들어옵니다.
- 뒤뜰 오죽 — 검은 대나무 숲이 건물 뒤를 두르고 있어 산책하듯 한 바퀴 돌아볼 수 있습니다.
뒤뜰 오죽 사이를 지나면 율곡기념관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는 율곡 이이의 상소문과 편지·시, 신사임당의 그림과 글씨를 함께 볼 수 있습니다. 신사임당의 자녀인 옥산 이우, 매창의 유품도 함께 전시되어 한 집안의 글과 그림을 잇대어 살펴볼 수 있습니다. 경내에는 강릉시립박물관과 율곡인성교육관 등도 함께 있어 전시를 곁들여 둘러볼 수 있고, 잠시 쉬어 갈 공간도 마련되어 있어 가족 나들이로 들러도 코스 안에서 무리 없이 시간을 쓸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