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도심 사적 산책, 천마총에서 동궁과 월지까지








신라 천년의 도읍 서라벌의 한복판에는 왕과 왕족이 잠든 거대한 봉분, 별을 살피던 돌탑, 연회가 열리던 별궁 터가 걸어서 이어지는 거리 안에 모여 있습니다. 평지에 곡선으로 솟은 능선과 부채꼴 돌을 27단으로 쌓아 올린 천문대, 해가 지면 물 위로 번지는 누각의 불빛까지, 시대의 결이 다른 풍경을 한 권역에서 차례로 만날 수 있는 곳이 바로 경주 도심 사적지대입니다.
각 장소에서 먼저 볼 것, 가까이서 확인할 디테일, 발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동선과 관람 순서를 중심으로 정리했으니, 동선 지도 대신 눈으로 따라가는 안내서로 읽어 주세요.
경주 대릉원 — 천마총·황남대총·미추왕릉
대릉원은 약 12만 6,500㎡ 부지에 신라 왕족의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능원입니다. 황남동 일대에는 이 능원을 포함해 크고 작은 고분이 무리를 이루며 퍼져 있어, 대릉원은 그 거대한 고분군의 입구이자 핵심 구역에 해당합니다. 봉분마다 높이와 부피가 달라 평지 위로 곡선의 능선이 겹겹이 포개지고, 담장을 넘어선 시야에는 키 큰 소나무와 흙길이 능과 능 사이를 잇습니다.
관람의 핵심은 천마총입니다. 대릉원 고분 가운데 유일하게 내부를 전시관으로 개방한 무덤으로, 지름 47m·높이 약 12.7m 규모의 봉분 안으로 들어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의 단면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나무로 짠 덧널 위에 냇돌을 쌓고 다시 흙과 점토로 봉분을 덮은 신라 특유의 구조가 단면 모형과 함께 드러나, 어디까지가 목곽이고 어디서부터 돌무지인지 층위를 눈으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전시실 안쪽으로는 부장품의 배치를 재현해 두었습니다. 1973년 발굴 당시 이 무덤에서는 금관과 금모자, 새날개 모양 관식, 금허리띠, 금동신발 등 1만 1,500여 점에 이르는 유물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무덤 이름의 유래가 된 천마도 장니(말다래)의 복제품도 함께 전시되어 있으니, 자작나무 껍질 위에 흰 말이 하늘로 솟구치는 그림의 선과 갈기의 표현을 가까이서 확인해 보세요.
천마총을 나오면 나무 너머로 또 하나의 거대한 봉분이 이어집니다. 황남대총은 남북 약 120m·동서 약 80m·높이 23m에 이르는 표주박 모양의 쌍분으로, 대릉원에서 가장 큰 무덤입니다. 두 개의 봉분이 맞붙어 하나의 윤곽선을 만드는데, 옆에서 비스듬히 바라보면 왜 표형분(瓢形墳)이라 부르는지 단번에 들어옵니다. 봉분의 능선이 가장 길게 늘어지는 지점을 찾아 걸음을 멈추면 쌍분의 굴곡을 한 화면에 담기 좋습니다.
- 천마총 — 내부를 개방한 고분, 적석목곽 단면 구조와 출토 유물·천마도 복제품 전시
- 황남대총 — 남북 약 120m에 이르는 표주박형 쌍분, 대릉원 최대 봉분
- 미추왕릉 — 주인이 전하는 드문 고분, 댓잎군사(竹葉軍) 설화가 깃든 곳
동선은 후문으로 들어와 오른편 천마총을 먼저 보고, 황남대총을 끼고 돌아 미추왕릉 방향으로 빠져나오는 흐름이 자연스럽습니다. 미추왕릉은 13대 임금 미추 이사금의 능으로 전하는데, 적군이 쳐들어왔을 때 댓잎을 귀에 꽂은 군사들이 나타나 신라를 구했다는 설화가 따라붙어 별칭으로 죽현릉(竹現陵)·죽장릉이라고도 불립니다. 능 앞은 다른 봉분과 달리 담과 문으로 구획되어 있어, 주인을 알 수 없는 다른 무덤들과 어떻게 다른지 비교하며 보면 좋습니다. 봉분 사이로 난 흙길과 그늘이 길게 이어져, 능과 능 사이를 거니는 걸음이 절로 느려집니다.
경주 첨성대와 동부사적지대 꽃밭
첨성대는 신라 선덕여왕(재위 632~647) 때 세워진 것으로 전하는, 현존하는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대입니다. 높이 약 9.17m, 밑지름 4.93m·윗지름 2.85m로, 아래는 둥글고 위는 네모진 상방하원(上方下圓)의 형상입니다. 구조는 크게 기단부, 술병처럼 부푼 원통부, 그리고 정상의 정자석(井字石)으로 나뉩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부채꼴로 다듬은 돌을 27단으로 쌓아 올린 원통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27단이라는 단 수는 선덕여왕이 신라 27대 임금이라는 점과 맞물려 해석되기도 합니다. 중간쯤인 제13~15단에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는 정사각형 창구가 남쪽으로 나 있고, 제19·20단과 제25·26단에는 긴 돌(장대석)을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걸쳐 두어 윗부분을 단단히 잡아 줍니다. 매끈하게 다듬은 바깥면과 달리 안쪽은 돌의 뒷뿌리가 그대로 드러나 면이 고르지 않으니, 창구 위치를 기준으로 한 바퀴 돌며 안팎의 차이를 짚어 보세요.
탑을 둘러싼 동부사적지대 평지는 계절마다 색이 바뀌는 꽃밭으로 가꿔져 있습니다. 봄에는 유채가 노란 띠를 이루고, 여름에는 양귀비·백일홍·해바라기가 차례로 들판을 채우며, 가을이면 핑크뮬리가 분홍 물결을 이룹니다. 핑크뮬리 군락은 대체로 9월 하순부터 10월 중순 사이에 절정을 이루는데, 분홍빛 풀밭 너머로 돌탑이 솟은 장면을 담으려면 해 질 무렵 서쪽 노을을 등지고 탑을 정면에 두는 방향이 좋습니다. 시야가 트인 쪽을 먼저 잡고 걷는 방향을 정한 뒤 움직이면 인파 속에서도 구도를 잃지 않습니다.
첨성대 주변은 그 자체로 신라 역사 지구의 심장부입니다. 남서쪽으로는 신라의 왕성이던 월성 터가, 그 곁으로는 김알지 탄생 설화가 깃든 계림의 노거수 숲이 이어지고, 동쪽으로는 동궁과 월지가 멀지 않습니다. 첨성대에서 출발해 꽃밭을 가로질러 계림과 월성을 거쳐 동궁과 월지로 넘어가는 도보 동선을 잡으면, 천문대에서 별궁까지 한 번의 산책으로 연결됩니다.
동궁과 월지 — 밤의 별궁과 회랑
동궁과 월지는 신라 왕궁의 별궁 터입니다. 왕세자가 거처하고, 나라에 경사가 있거나 귀빈을 맞을 때 연회를 열던 공간으로, 문무왕 14년인 674년에 못(월지)을 파고 삼국통일이 마무리된 뒤인 679년에 동궁을 지었다고 전합니다. 신라가 무너진 뒤 폐허가 된 못에 오리와 기러기만 깃들어, 조선시대에는 기러기 안(雁)·오리 압(鴨) 자를 써 안압지로 불렸습니다. 본래 이름이 월지였다는 사실은 뒷날 발굴된 토기 조각의 글자로 확인되었습니다.
1975년 못의 물을 빼고 진행한 발굴에서 회랑 자리를 비롯한 건물터 26곳이 드러났고, 그중 임해전으로 추정되는 터와 함께 누각 3동이 복원되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습니다. 당시 3만여 점에 이르는 유물이 쏟아졌는데, 14면체 주사위인 주령구(주사위 면은 정사각형 6면과 육각형 8면으로 이루어집니다)와 금동삼존판불, 금동가위 등이 대표적입니다. 출토 유물의 상당수는 인근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관에서 볼 수 있으니, 못가의 건물과 그 안에서 나온 물건을 함께 떠올리며 보면 좋습니다.
관람은 낮과 밤이 전혀 다릅니다. 해가 남아 있을 때는 못의 둘레와 복원 누각의 목조 짜임을 또렷이 살피기 좋고, 어두워지면 단청에 조명이 들어오면서 물 위에 또 하나의 누각이 떠오릅니다. 추천 동선은 입구에서 못의 동편을 따라 복원된 세 누각을 차례로 지나며 처마선과 기둥 사이로 못을 바라보는 길입니다. 못가에 서면 누각의 윤곽과 단청 불빛이 수면에 그대로 비쳐 위아래로 대칭을 이루고, 물가에 바짝 붙은 자리일수록 이 물그림자가 또렷하게 잡힙니다. 바람이 잦아드는 시간대를 골라 수면이 잔잔할 때를 노리면 대칭의 선이 한층 곧게 떨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