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천년의 향기 경주 역사 탐방





경주에서 신라를 조금 차분하게 따라가고 싶을 때는 분황사에서 시작해 국립경주박물관을 거쳐 계림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잘 맞습니다. 분황사에서는 선덕여왕 때 세워진 절터와 벽돌처럼 쌓은 돌탑이 신라 왕경 한가운데 자리했던 불교의 무게를 보여 주고, 박물관에서는 무덤에서 나온 금관과 금허리띠, 말갖춤 유물이 왕과 귀족의 의례를 구체적으로 펼쳐 줍니다. 마지막에 계림 숲길로 들어서면 김알지 탄생 설화가 월성 서쪽의 낮은 지형과 오래된 나무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놓입니다.
세 곳은 성격이 조금씩 다릅니다. 분황사는 돌과 절터의 배치를 통해 7세기 신라 불교를 보여 주고, 국립경주박물관은 발굴된 유물로 왕경 사람들의 권위와 기술을 설명해 줍니다. 계림은 문헌 속 건국 설화가 실제 숲과 비각, 월성 일대 산책로로 이어지는 자리라서, 하루 안에 사찰과 무덤 유물, 왕실 설화를 함께 엮어 보기 좋습니다.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 및 모전석탑
분황사는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된 절로 전해집니다. 지금은 절의 규모가 왕경 유적들 사이에서 비교적 아담하게 느껴지지만, 기록과 발굴 성과를 함께 보면 신라 불교사에서 차지하는 자리가 꽤 큽니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는 분황사가 선덕왕 때 세워졌다고 전하고, 신라 승려 자장과 원효가 이 절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한 곳으로도 알려져 있습니다.
마당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중심을 잡아 주는 유산이 분황사 모전석탑입니다. 국보로 지정된 이 탑은 현재 남아 있는 신라 석탑 가운데 가장 오래된 석탑으로 꼽히며, ‘모전’이라는 이름처럼 흙벽돌을 구워 쌓은 전탑이 아니라 회흑색 안산암을 작은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올린 탑입니다. 경주에서 흔히 떠올리는 통일신라 화강암 석탑과 달리, 분황사 탑은 돌 하나하나가 벽돌처럼 겹을 이루어 올라가서 질감부터 다르게 다가옵니다.
기록에는 원래 9층이었다고 전하지만, 지금은 3층만 남아 있습니다. 넓은 1단 기단 위에 1층 몸돌이 크게 놓이고 그 위로 2층과 3층이 급격히 줄어드는 구조라, 아래쪽의 무게감이 탑 전체를 단단하게 붙잡고 있습니다. 기단 네 모퉁이에는 화강암으로 조각한 사자상이 앉아 있는데, 탑을 장식하는 조각이면서 동시에 사방을 지키는 존재처럼 보입니다. 가까이 다가가면 사자상의 표정과 자세가 모두 똑같지 않아, 오래된 돌조각을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1층 몸돌 네 면에는 문처럼 보이는 감실이 있고, 그 양옆에는 불법을 지키는 인왕상이 새겨져 있습니다. 인왕상은 7세기 신라 조각 양식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는데, 가만히 보면 몸의 비틀림과 팔의 힘이 얕은 부조 안에서도 또렷합니다. 지붕돌은 위아래가 계단처럼 층을 이루고, 3층 지붕돌 위에는 화강암으로 만든 활짝 핀 연꽃 모양 장식이 놓여 있습니다. 1915년 수리 때 탑 안에서 사리함과 구슬 등이 발견되었다는 점도 이 탑이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예배와 신앙의 중심이었다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분황사지는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이어진 발굴조사를 통해 창건 당시 가람 배치가 확인된 곳이기도 합니다. 탑을 중심에 두고 동쪽, 서쪽, 북쪽에 금당을 배치한 품자형 일탑삼금당식 가람이었고, 이는 신라에서 처음 확인된 형식으로 설명됩니다. 지금 눈앞에 보이는 절터는 단출하지만, 발굴로 드러난 배치를 떠올리면 분황사가 황룡사와 가까운 왕경의 핵심 사찰이었다는 점이 한층 선명해집니다.
입구 쪽에 남아 있는 경주 분황사 당간지주도 모전석탑만큼 시간을 들여 볼 만합니다. 당간지주는 절에서 의식이나 행사가 열릴 때 ‘당’이라는 깃발을 매다는 긴 장대를 양쪽에서 붙잡던 돌기둥입니다. 가운데 세웠던 당간은 사라졌지만, 두 지주와 당간을 받쳤던 거북 모양 간대석이 남아 있어 통일신라 사찰 입구의 의례 공간을 짐작하게 합니다.
두 돌기둥 안쪽에는 당간을 고정하기 위한 원형 간공이 아래와 중간, 위쪽에 마련되어 있습니다. 장식이 지나치게 많지 않아 오히려 돌의 비례가 잘 보이고, 위로 올라갈수록 살짝 좁아지는 선이 안정적입니다. 특히 거북 모양 간대석을 둔 사례는 현존하는 통일신라 당간지주 가운데 유일한 예로 알려져 있어, 분황사 당간지주를 볼 때는 돌기둥만이 아니라 바닥에서 당간을 받치던 구조까지 함께 살펴보는 편이 좋습니다.
분황사 주변은 황룡사지와 가까워 신라 왕경의 사찰 지대를 이어 걷기에도 알맞습니다. 황룡사는 신라 최대 사찰로 알려진 곳이고, 분황사는 황룡사·흥륜사 등과 함께 왕경에 조성된 칠처가람 가운데 하나로 전해집니다. 절터를 나와 주변 평지를 바라보면, 오늘날에는 조용한 유적 산책로처럼 보이는 이 일대가 한때 왕실과 사찰, 도시 생활이 맞닿은 공간이었다는 점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됩니다.
국립경주박물관 신라 금관 갤러리
분황사에서 돌탑과 당간지주를 보고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동하면, 신라를 이해하는 재료가 돌에서 금속과 유리, 말갖춤으로 넓어집니다. 박물관의 신라역사관은 기원전 57년부터 기원후 935년까지 이어진 신라의 역사를 다루며, 건국과 성장, 왕경 문화, 황금문화 등을 전시실 안에서 이어 보여 줍니다. 그중 황금문화를 다루는 공간에서는 금관, 금귀걸이, 금허리띠, 유리잔, 장식보검처럼 무덤에서 나온 유물이 신라 지배층의 권위와 장례 의례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신라 금관 앞에 서면 가장 먼저 머리띠 위로 솟은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이 눈에 들어옵니다. 여기에 사슴뿔처럼 갈라지는 장식이 더해지고, 얇은 금판에는 작은 금판 장식인 달개가 촘촘히 매달려 있습니다. 금관이 실제로 착용자의 움직임을 따라 흔들렸다면, 달개와 곱은옥이 금빛과 초록빛을 함께 흔들며 의례의 장면을 더 강하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금관은 일상 장신구라기보다 통치자이자 제사장으로서의 지위를 드러내는 물건으로 해석됩니다.
금관을 볼 때는 가운데 솟은 세움장식만 보고 지나가기보다 관테 아래로 내려오는 드리개와 곱은옥의 위치도 함께 보면 좋습니다. 신라 금관에는 나무, 사슴뿔, 새, 곱은옥, 달개 같은 상징 요소가 결합되어 있는데, 국립경주박물관은 이러한 장식이 하늘과 땅을 잇는 신성한 나무, 풍요와 초월적 권능, 생명력과 재생 같은 의미로 해석된다고 소개합니다. 얇은 금판을 오려 붙이고 문양을 새긴 제작 방식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대표 유물로 자주 언급되는 천마총 금관은 신라 6세기 금관으로, 높이 32.5cm로 소개됩니다. 천마총은 경주 황남동의 고분을 1973년에 발굴하는 과정에서 하늘을 나는 말 그림이 있는 말다래가 확인되면서 지금의 이름을 얻었습니다. 그 안에서 금관뿐 아니라 팔찌, 금귀걸이, 금허리띠, 말갖춤 유물 등이 함께 나와 신라 지배층의 장례 차림과 말을 활용한 위세 표현을 함께 보여 줍니다.
천마총 금관은 머리띠 위에 나뭇가지 모양 세움장식 세 개와 사슴뿔 모양 장식 두 개를 세운 전형적인 신라 금관 형태입니다. 관 전체에 곱은옥과 달개가 많이 달려 있어 다른 금관과 비교해도 장식 밀도가 높은 편으로 소개됩니다. 금관만 따로 보면 화려한 왕관 하나로 보이지만, 금허리띠와 금귀걸이, 말갖춤 유물까지 이어서 보면 머리와 허리, 말 장식까지 연결된 의례적 차림이 한 벌의 체계처럼 이해됩니다.
박물관 관람에서는 신라역사관의 황금문화 유물을 먼저 본 뒤, 시간이 된다면 신라미술관의 불교 관련 전시까지 이어 가도 좋습니다. 신라미술관 2층 불교사원실에서는 황룡사와 분황사, 감은사, 사천왕사 등 신라 사찰에서 나온 사리기와 기와, 전돌, 벽전 등을 소개합니다. 분황사에서 실제 절터를 보고 온 뒤라면, 박물관 안의 사찰 유물들이 어느 공간에서 쓰였는지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어집니다.
참고로 국립경주박물관 개관 80주년과 APEC 2025 KOREA 정상회의를 기념해 열린 특별전 ‘신라 금관, 권력과 위신’은 2025년 11월 2일부터 2026년 2월 22일까지 일반 공개된 전시였습니다. 여섯 점의 신라 금관과 여섯 점의 금허리띠가 한자리에 모였던 전시였지만, 현재는 종료되었으므로 방문 시점에 따라 금관과 주요 유물의 전시 위치, 대여 여부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일반적으로 10:00부터 18:00까지 관람할 수 있고, 3월부터 10월 사이 매주 토요일에는 20:00까지 야간 연장 개관을 운영합니다. 입장은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이며, 1월 1일과 설날, 추석에는 쉽니다. 3월과 11월 두 번째 월요일에는 임시 휴실일이 안내되므로, 금관이나 특정 전시실을 목적으로 간다면 출발 전에 박물관 공지와 전시실 운영 여부를 확인하는 편이 좋습니다.
경주 계림 신라 시조 숲
박물관에서 나와 계림으로 향하면 공간의 결이 다시 달라집니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설화를 간직한 숲으로, 1963년 1월 2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면적은 23,023㎡이며 월성 서쪽, 첨성대와 교촌마을 사이에 자리해 경주 도심 유적을 걸을 때 자연스럽게 지나게 되는 위치입니다.
이 숲의 이름은 원래 신라 건국 때부터 있었다고 전하는 시림에서 시작합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서는 탈해왕 4년인 60년에 금성 서쪽 시림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환한 빛이 비쳤다고 합니다. 왕이 신하를 보내 살피게 하니 금으로 된 작은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고, 그 아래에서 흰 닭이 울고 있었다고 전합니다. 궤짝을 열자 총명하게 생긴 사내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여겨 태자로 삼았습니다.
아이에게는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었고, 금궤에서 나왔다 하여 성을 김씨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후 알지는 왕위를 파사에게 양보했고, 훗날 그의 후손인 미추왕이 김씨로서는 처음 신라 왕위에 올랐다고 전해집니다. 내물왕 이후 신라 말까지 김알지의 후손이 나라를 다스렸다는 설명이 이어지면서, 계림은 단순한 숲이 아니라 신라 김씨 왕실의 기원을 품은 장소로 자리 잡았습니다.
숲 안쪽에는 조선 순조 3년인 1803년에 세운 김알지 탄생 관련 비석이 남아 있습니다. 비각 주변으로는 왕버들, 느티나무, 단풍나무 같은 고목들이 넓게 가지를 뻗고, 흙길은 월성 쪽 산책로와 부드럽게 이어집니다. 계림은 면적이 아주 넓은 숲은 아니지만 나무 사이 간격이 넉넉하고 길이 완만해, 박물관 관람 뒤 걸음을 늦추기에 좋습니다.
계림을 걸을 때는 월성의 위치를 함께 떠올리면 이해가 쉬워집니다. 월성은 신라 왕궁이 있던 자리로 알려진 유적이고, 계림은 그 서쪽에 놓인 숲입니다. 첨성대와 경주향교, 교촌마을도 가까워서 계림만 따로 보고 돌아서기보다는 주변 유적을 이어 걷는 동선이 잘 맞습니다. 해가 강한 여름 낮에는 숲 그늘이 도움이 되지만, 비가 온 뒤에는 흙길이 미끄러울 수 있어 바닥이 편한 신발이 좋습니다.
계림에서 첨성대 쪽으로 걸어 나오면 시야가 낮고 넓게 열립니다. 첨성대 주변 평지는 경주 도심 유적 가운데 이동이 쉬운 편이고, 교촌마을 방향으로는 한옥과 경주향교가 이어집니다. 분황사에서 신라 불교의 돌탑을 보고, 박물관에서 금관과 무덤 유물을 살핀 뒤, 계림에서 김알지 설화의 숲길을 걷는 흐름은 신라 왕경의 종교와 권위, 왕실 기원 이야기를 한나절 또는 하루 일정 안에 연결해 줍니다.
하루 동선으로 묶을 때
- 분황사에서는 모전석탑의 회흑색 안산암 탑신, 1층 몸돌의 감실과 인왕상, 기단 모서리의 사자상, 당간지주의 거북 모양 간대석을 함께 보면 절터의 중심 유산이 자연스럽게 잡힙니다.
-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신라역사관의 황금문화 전시를 중심으로 금관의 세움장식과 달개, 곱은옥, 금허리띠를 이어 살피면 무덤 속 의례 차림을 한 흐름으로 이해하기 좋습니다.
- 계림에서는 김알지 탄생 설화가 전해지는 숲길과 1803년에 세운 비각, 월성 서쪽의 고목들을 함께 둘러보면 신라 왕실 설화가 놓인 실제 지형이 보입니다.
- 이동 순서는 분황사에서 시작해 국립경주박물관으로 이동한 뒤 계림과 첨성대, 교촌마을을 이어 걷는 방식이 무난합니다. 박물관 관람 시간이 길어질 수 있으니 금관 전시실을 먼저 보고, 여유가 있으면 신라미술관의 불교사원실까지 더하는 편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