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동성당에서 한옥 골목 지나 한벽당까지




전주한옥마을 서쪽의 전동성당에서 출발해 한옥 골목의 다원에서 쉬었다가, 동쪽 승암산 자락에 자리한 한벽당까지 걷는 길입니다. 붉은 벽돌로 쌓은 근대 성당과 700여 채의 한옥이 모인 도심 한옥군, 전주천 절벽에 세운 조선 시대 누각이 한 동선 안에 이어집니다. 경기전과 태조로 주변은 방문객으로 붐비지만 은행로를 지나 향교길로 접어들면 상점이 조금씩 줄고, 낮은 담장 너머의 살림집과 전주천 물길이 가까워집니다.
세 장소만 곧장 잇는다면 반나절에도 둘러볼 수 있지만, 성당 내부 관람과 차 한 잔, 전주향교나 완판본문화관까지 함께 살피려면 시간에 여유를 두는 편이 좋습니다. 전동성당은 지금도 미사와 전례가 열리는 성전이고 다례 체험은 예약제로 운영되는 경우가 있으며, 한벽당으로 오르는 마지막 구간에는 계단과 경사가 있습니다. 운영 시간과 프로그램은 방문 시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니 출발 전에 해당 시설의 최신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
한옥 지붕과 마주 선 전동성당
전동성당은 경기전 맞은편이자 한옥마을 서쪽 입구에 자리합니다. 이 일대는 1791년 신해박해 때 윤지충과 권상연이 처형된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윤지충은 천주교 교리에 따라 어머니의 제사를 지내지 않고 신주를 불태웠다는 이유로 고발되었고, 권상연과 함께 참수되었습니다. 두 사람은 한국 천주교 최초의 순교자로 꼽히며, 전동성당이 호남 지역 천주교사의 중요한 장소로 여겨지는 까닭도 이 순교터 위에 성당이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초대 주임신부인 보두네 신부는 1891년 무렵 순교지 인근에 본당 터전을 마련한 뒤 성당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설계는 서울 명동성당 건축에도 참여한 프와넬 신부가 맡았으며, 공사는 1908년에 시작되었습니다. 외관은 1914년에 완성되었고 내부 공사가 이어져 1931년에 전체 건축을 마쳤습니다. 한 번에 지어진 건물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성전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점을 알고 보면 외부와 내부에 쓰인 재료도 더 세심하게 읽힙니다.
당시 도로를 내기 위해 전주부성 성벽을 철거하면서 나온 돌은 성당의 주춧돌로 사용되었다고 전합니다. 성벽의 흙으로 벽돌을 구웠으며, 석재는 익산 황등산에서 가져오고 목재는 치명자산 일대에서 마련했다는 기록도 전해집니다. 서양식 종교 건축이지만 건물을 떠받치는 돌과 벽돌에는 옛 전주읍성의 재료가 들어간 셈입니다. 성당 앞 순교 기념비와 함께 살피면 건축의 출발점이 된 장소의 역사가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외벽에는 붉은 벽돌과 회색 벽돌이 규칙적으로 섞여 있고, 중앙 종탑 양옆으로 작은 탑이 서서 좌우 균형을 이룹니다. 출입구와 창 위에는 반원형 아치가 반복되며 두꺼운 벽체와 묵직한 종탑은 로마네스크 건축의 특징을 보여 줍니다. 그 위로 둥근 돔과 곡선 장식이 더해져 비잔틴 계통의 요소도 함께 나타납니다. 앞마당에서 조금 떨어져 바라보면 가운데 종탑을 가장 높게 두고 양쪽 탑의 높이를 낮춘 삼각형 윤곽이 한눈에 잡힙니다.
건물 가까이에서는 벽돌 사이의 줄눈과 화강석 장식, 아치 아래로 깊게 들어간 출입구가 또렷합니다. 정면의 규모가 크면서도 벽돌 색을 달리해 수평선과 창 둘레를 나눈 덕분에 벽면이 한 덩어리처럼 무겁게 보이지 않습니다. 성당 앞의 흰 그리스도상과 순교지를 알리는 표석은 장식물이 아니라 이곳의 종교적 의미를 전하는 시설이므로, 기념 촬영을 할 때에도 기도하거나 참배하는 사람들의 동선을 비워 두는 것이 좋습니다.
내부가 개방되어 있다면 높은 천장 아래로 기둥과 아치가 반복되며 제단까지 이어지는 구조를 볼 수 있습니다. 긴 회중석은 종탑 아래 출입구에서 제단을 향해 곧게 놓였고, 측면 창으로 들어온 빛이 밝은 벽과 기둥을 따라 번집니다. 바깥의 붉은 벽돌과 묵직한 종탑에 비해 내부는 높이와 반복되는 아치가 공간을 길고 단정하게 만듭니다.
전동성당은 관광용 전시관이 아니라 지금도 신자들이 사용하는 성전입니다. 미사나 전례가 진행될 때에는 출입이 제한될 수 있고, 입장이 가능하더라도 통화와 큰 소리의 대화는 삼가는 편이 좋습니다. 제단 가까이 이동하거나 예식 중 사진을 촬영하기보다는 현장 안내에 따라 뒤쪽에서 조용히 머물러 주세요. 내부 개방 시간은 미사와 행사 일정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성당 문을 나서면 태조 이성계의 어진을 봉안한 경기전의 돌담과 솟을삼문이 길 건너에 이어집니다. 전동성당 쪽에서는 붉은 벽돌 너머로 한옥 기와가 포개지고, 경기전 앞에서는 성당 종탑이 담장 위로 높이 솟습니다. 조선 왕조의 본향을 상징하는 공간과 천주교 순교지가 태조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한 장면은 전주 구도심에 조선 시대와 근대의 역사가 함께 남아 있음을 잘 보여 줍니다.
생활 골목 속에서 만나는 전주 한옥과 다도
전주한옥마을은 풍남동과 교동 일대에 700여 채의 한옥이 모인 국내 최대 규모의 전통 한옥촌이자 도심 한옥군입니다. 경기전과 오목대, 전주향교 같은 문화유산뿐 아니라 박물관과 공방, 문학관을 포함한 여러 문화시설이 주거지 사이에 자리합니다. 처음부터 관광을 위해 조성된 민속촌이 아니라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살아온 마을이어서, 상업이 활발한 큰길과 조용한 생활 골목의 모습이 뚜렷하게 다릅니다.
현재 한옥군의 형성은 1910년 무렵 시작되었습니다. 전주부성이 철거된 뒤 일본인 상권과 거주지가 성 안으로 넓어지자 전주 사람들이 교동과 풍남동 일대에 한옥을 지어 모여 살았고, 이 과정에서 근대 도시 안의 한옥 주거지가 자리를 잡았습니다. 전통 목조건축의 기본을 따르면서도 좁아진 대지와 달라진 생활 방식에 맞춘 집들이 함께 들어서 있어, 궁궐이나 관아의 한옥과는 규모와 배치가 다릅니다.
태조로에서 골목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관광도로 대신 나무 대문과 낮은 돌담, 작은 마당을 둔 집들이 촘촘하게 이어집니다. 담장 위로는 기와지붕의 곡선이 겹치고, 처마 아래에는 빗물을 받는 홈통이나 주민들이 사용하는 생활도구가 놓이기도 합니다. 여름에는 능소화와 담쟁이가 담장을 타고 오르며, 비가 오는 날에는 기와 끝에서 떨어진 물이 마당의 돌과 흙을 적십니다. 골목 폭이 좁은 곳에서는 차량과 주민이 함께 오가므로 한쪽으로 붙어 걷는 것이 안전합니다.
한옥 다원은 마루와 방 사이의 문을 열어 마당과 실내를 연결하거나, 처마 아래에 자리를 마련한 곳이 많습니다. 마루에 앉으면 서까래와 기둥이 가까이 보이고, 방 안에서는 창호를 통과한 빛이 낮게 퍼집니다. 같은 한옥이라도 안채를 찻집으로 바꾼 곳과 별채나 마당을 손님 공간으로 쓰는 곳의 구조가 다르므로, 신발을 벗는 위치와 이용 가능한 공간은 직원의 안내를 따르면 됩니다.
전통 다도는 차를 마시는 순서만 익히는 체험이 아니라 물과 다구를 다루는 과정을 함께 배우는 시간입니다. 먼저 다관과 숙우, 찻잔을 정돈한 뒤 따뜻한 물로 그릇을 데웁니다. 차의 종류에 맞춰 물의 온도와 우리는 시간을 조절하고, 다관에서 나온 차는 한 잔에 먼저 가득 채우지 않습니다. 여러 찻잔을 번갈아 오가며 조금씩 나누어 따라야 잔마다 양과 농도가 고르게 맞습니다.
찻잔은 한 손으로 들기보다 다른 손으로 밑을 가볍게 받치면 안정적입니다. 바로 크게 마시기보다는 잔 가까이에서 향을 살피고, 온도가 조금 내려간 뒤 나누어 마시면 차의 맛을 구분하기도 쉽습니다. 함께 나오는 다식은 차의 떫거나 쌉싸래한 맛을 부드럽게 이어 주지만, 제공 여부와 종류는 다원마다 다릅니다. 다구의 이름이나 예법을 모두 외우려고 하기보다 진행자의 설명에 맞춰 물을 붓고 차를 나누는 흐름을 따라가면 부담이 적습니다.
일반 찻집 이용과 다례 체험은 구분해서 예약해야 합니다. 메뉴를 주문하면 차와 다식을 내어 주는 곳이 있는 반면, 다구 사용법과 차 우리는 순서, 기본 예절을 별도 프로그램으로 운영하는 공간도 있습니다. 전주한옥마을의 문화시설과 승광재 등에서도 다도와 전통예절 관련 체험이 소개되지만, 상시 운영 여부와 개인 참여 가능 여부, 최소 인원은 프로그램마다 달라집니다. 다도 과정을 배우려는 경우에는 방문일의 운영 시간과 예약 조건을 미리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차를 마신 뒤에는 은행로를 거쳐 향교길을 따라 동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은행로에는 공방과 문화공간이 이어지고, 향교길 안쪽에는 전주향교가 자리합니다. 전주향교는 대성전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유교 제향과 교육 기능을 이어 온 공간이므로 개방 구역과 행사 여부를 확인해 둘러보는 것이 좋습니다. 오래 머물 시간이 없다면 향교길의 낮은 담장을 따라 그대로 전주천 쪽으로 걸어도 한벽당으로 연결됩니다.
향교길 끝자락에는 전주의 옛 책과 목판 인쇄 문화를 다루는 완판본문화관과 전통문화 행사가 열리는 전주한벽문화관이 가까이 자리합니다. 완판본은 조선 시대 전주에서 간행한 책을 가리키며, 전주는 목판본 출판이 활발했던 지역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시와 체험 운영일은 시설별로 다를 수 있으므로 관람을 더할 계획이라면 휴관일과 예약 여부를 확인해 주세요.
이 구간은 관광객뿐 아니라 주민들이 매일 이용하는 생활도로입니다. 대문 앞에 서서 출입을 막거나 담장 안쪽을 촬영하는 행동은 피하고, 좁은 골목에서 단체로 멈출 때에는 다른 보행자가 지나갈 공간을 남겨 두어야 합니다. 저녁에는 큰길을 벗어난 골목이 빠르게 어두워질 수 있으므로 해가 진 뒤에는 조명이 있는 향교길과 전주천 산책로를 중심으로 이동하는 편이 수월합니다.
전주천 절벽 위에 걸린 한벽당
한벽당은 한옥마을 동쪽 끝, 승암산 기슭의 바위 절벽 위에 세워진 누각입니다. 조선 태종 때 문신 월당 최담이 관직에서 물러나 전주로 내려온 뒤 별장으로 지었다고 전하며, 처음에는 월당루라 불렸다는 이야기도 남아 있습니다. 건물은 1683년과 1733년을 비롯해 여러 차례 수리되었고, 현재 모습은 1828년에 크게 중수한 것을 바탕으로 합니다.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한벽루라는 이름으로도 불립니다.
한벽당이라는 이름은 절벽과 그 아래로 흐르는 맑고 찬 물을 나타낸 표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전합니다. 예전에는 누각 아래 바위에 부딪친 물안개와 숲이 어우러진 경관을 ‘한벽청연’이라 불렀고, 전주팔경 가운데 하나로 꼽았습니다. 남원의 광한루, 무주의 한풍루와 함께 호남의 이름난 누각을 가리키는 ‘삼한’으로 언급되기도 했습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입니다. 평평하게 다듬은 넓은 터에 올린 것이 아니라 불규칙한 자연 암반의 높낮이를 그대로 받아들여 지었습니다. 절벽 쪽 기둥 아래에는 높이가 서로 다른 돌기둥을 받쳤고, 산기슭과 닿은 뒤편에는 마루 밑까지 축대를 쌓았습니다. 전주천 아래쪽에서 올려다보면 바위와 돌기둥 위로 나무 기둥과 지붕이 차례로 이어져 누각이 절벽 가장자리에 걸린 듯 보입니다.
뒤쪽을 제외한 세 면은 열린 구조이고, 마루 가장자리에는 낮은 벽과 계자난간을 둘렀습니다. 기둥 사이를 벽으로 막지 않아 전주천과 맞은편 숲이 누각 안쪽 풍경으로 이어지며, 팔작지붕의 깊은 처마가 한낮의 햇빛을 가립니다. 신발을 벗고 마루에 오를 수 있도록 개방된 때에는 난간에 기대거나 기둥과 현판을 손으로 만지지 말고, 다른 방문객이 드나들 통로를 비워 두는 것이 좋습니다.
마루에서는 전주천이 승암산 기슭을 따라 굽어 흐르고, 맞은편으로 남고산 방향의 숲이 이어집니다. 물소리와 나뭇잎 흔들리는 소리가 가까운 데다 강 쪽에서 들어온 바람이 열린 마루를 통과해 여름철에도 그늘이 비교적 서늘합니다. 이런 입지 덕분에 예부터 시인과 묵객이 모여 시를 짓고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이들이 남긴 여러 제영시가 전해집니다. 조선 후기 명필 창암 이삼만과 한벽당을 연결하는 일화도 전주 지역의 이야기로 남아 있습니다.
한벽당 동쪽에는 달을 맞이한다는 뜻의 요월대가 있으며, 현재 시설은 1986년에 복원된 것입니다. 누각 주변은 승암산과 전주천 산책로가 맞닿는 지점이라 한옥마을에서 이어 온 도보 여행을 천변 방향으로 연장하기 좋습니다. 다만 집중호우 뒤에는 전주천 수위가 높아질 수 있으므로 하천변 출입 통제선이 설치되어 있다면 우회 안내를 따라야 합니다.
한벽굴까지 이어지는 근대의 철길 흔적
한벽당 아래쪽의 한벽굴은 일제강점기에 전라선 철도를 놓으면서 승암산 자락을 뚫어 만든 인공 터널입니다. 조선 시대부터 경승지로 이름난 누각 아래에 철길이 지나게 되면서 자연 암벽과 누각 주변 지형도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후 전라선 철도가 전주 시가지 동쪽으로 옮겨지면서 열차 운행이 멈췄고, 지금은 전주천과 자연생태관 방향을 잇는 보행 동선으로 이용됩니다.
터널은 길지 않지만 안쪽으로 몇 걸음 들어가면 바깥보다 어둡고 온도도 낮게 느껴집니다. 비가 내렸거나 습도가 높은 날에는 벽과 바닥에 물기가 남을 수 있으며, 보행자와 자전거가 같은 길을 이용할 때도 있습니다. 입구에서 안쪽 상황을 먼저 확인하고 서로 속도를 줄이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습니다. 터널 주변의 암벽이나 선로 흔적이 남은 구간에는 올라가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한옥마을 중심부에서 한벽당으로 갈 때에는 은행로와 향교길을 지나 전주향교, 완판본문화관, 한벽문화관 방향으로 이어 가면 동선이 자연스럽습니다. 한벽당 직전에는 돌계단과 경사진 길이 있고, 비나 눈이 내린 뒤에는 바위와 나무 계단이 미끄러울 수 있습니다. 바닥이 평평한 골목만 걷는 코스는 아니므로 미끄럼이 적은 편한 신발이 알맞습니다.
돌아갈 때에는 걸어온 향교길을 되짚거나 전주천 산책로를 따라 남천교와 강암서예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해가 지면 승암산 아래와 한벽굴 안쪽이 먼저 어두워지므로 늦은 시간에는 천변의 조명과 통행 상황을 확인해 주세요. 전동성당에서 시작한 길은 조선 왕조의 흔적이 남은 경기전 앞을 지나 근대 한옥 주거지와 전통문화 공간을 통과한 뒤, 전주천 절벽의 누각과 옛 철도 터널 앞에서 마무리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