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밥 한 그릇에서 야시장 모주까지, 도보로 잇는 전주 미식 하루

전주는 콩나물국밥 한 그릇으로 아침을 열고, 한옥마을 찻집의 황차 한 잔으로 한낮을 쉬며, 남부시장 야시장의 육전과 모주로 저녁을 닫는 미식 동선이 도보권 안에 촘촘하게 모여 있는 도시입니다. 같은 콩나물국밥이라도 끓이는 방식과 곁들임이 가게 계열마다 다르고, 같은 찻집이라도 우려 마시는 방식과 내놓는 차의 계열이 갈립니다. 경기전과 향교, 전동성당 같은 문화재가 700여 채의 한옥 군락 사이에 자리한 한옥마을을 중심에 두면, 끼니와 찻자리, 시장 구경이 짧은 동선 안에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무엇을 먼저 보고 어떻게 골라야 하는지 손에 익혀 두면 한 끼, 한 잔의 밀도가 달라집니다.

전주 경원동·남부시장 콩나물국밥 맛길

전주 콩나물국밥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뚝배기를 불에 올려 펄펄 끓여 뜨겁게 내는 삼백집식(끓이는식·직화식)이고, 다른 하나는 남부시장에서 자리 잡아 퍼진 남부시장식(토렴식)입니다. 이름의 뿌리가 된 삼백집은 1947년 이봉순 씨가 간판도 없이 문을 연 집으로, 하루 300그릇만 끓여 팔고 다 나가면 오전이라도 솥을 내렸다는 데서 손님들이 붙인 이름이 그대로 상호가 되었다고 전합니다. 한편 남부시장식의 대표 격인 현대옥은 1979년 남부시장 한 귀퉁이에서 양옥련 여사가 문을 연 집으로, 식전에 내주는 수란이 간판처럼 알려져 있습니다. 같은 메뉴 이름이라도 국물 온도와 콩나물 식감, 달걀을 다루는 방식이 전혀 다르므로, 첫 숟갈을 뜨기 전에 어느 계열의 가게인지부터 확인하면 한 그릇을 제대로 즐길 수 있습니다.

남부시장식의 핵심은 토렴입니다. 식은 밥과 삶은 콩나물을 뚝배기에 담고 솥의 뜨거운 콩나물 육수를 국자로 부었다 따라내기를 여러 번 반복해 온도를 맞추기 때문에, 입이 데일 만큼 뜨겁지 않고 바로 떠먹기 좋은 온기로 나옵니다. 콩나물을 오래 끓이지 않으니 줄기가 무르지 않고 아삭하게 살아 있는 것이 이 방식의 특징입니다. 무와 대파, 멸치로 낸 국물은 미지근한 편이고 마늘 향이 또렷하며, 데친 오징어를 한 점 올리는 집이 많아 시원하고 칼칼한 끝맛이 따라옵니다. 식탁에는 새우젓과 젓갈, 김이 함께 깔려, 간을 더하거나 김을 찢어 넣으며 한 그릇을 자기 입맛에 맞춰 가게 됩니다. 반대로 삼백집식은 콩나물과 밥을 한 뚝배기에 넣고 직화로 끓여 구수하고 뜨거운 국물을 내므로, 추운 날 더운 국물을 원할 때 어울립니다.

가장 눈여겨볼 디테일은 수란입니다. 남부시장식은 국밥에 달걀을 풀어 넣지 않고, 작은 그릇에 반숙으로 익힌 수란을 따로 줍니다. 여기에 펄펄 끓는 국물을 두세 숟가락 붓고 김가루를 넣어 먼저 후루룩 비우고 본 국밥으로 넘어가는 것이 현지에서 통하는 순서입니다. 곁들여 나온 새우젓이나 장조림으로 수란 그릇의 간을 잡는 손님도 많습니다. 수란 국물로 입을 데우면 본 국밥의 마늘 향과 오징어 육수가 한층 또렷하게 다가옵니다. 반대로 삼백집식은 뚝배기 안에 달걀을 깨 넣어 함께 익히므로, 달걀을 국물에 풀어 진하게 먹고 싶다면 이쪽을 고르면 됩니다.

가게를 고를 때는 메뉴판보다 주방을 먼저 보는 편이 빠릅니다. 토렴을 하는 집이라면 국자로 육수를 붓고 따라내는 동작이 카운터 너머로 보이고, 수란 그릇과 김가루가 기본 세팅으로 깔립니다. 곁들임 술인 모주를 함께 파는 곳도 많습니다. 모주는 막걸리에 생강·대추·감초·인삼·갈근·계피 같은 한약재를 넣고 알코올을 날리며 서너 시간 뭉근하게 달여 도수를 거의 없앤 약술로, 일부 집은 찹쌀가루를 풀어 농도를 더합니다. 광해군 때 제주로 귀양 간 인목대비의 어머니 노씨 부인이 술지게미를 재탕해 섬사람들에게 값싸게 나눠 팔던 데서 비롯해 대비(大妃)모주, 곧 모주로 불리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달큰하고 따뜻해 해장과 곁들임을 겸하기 좋아, 국밥 한 그릇에 모주 한 사발이 전주식 아침 조합으로 통합니다.

전주 한옥마을 다도 전통찻집 골목

한옥마을 골목으로 들어서면 온돌방을 그대로 살린 전통찻집이 이어집니다. 신을 벗고 좌식 방에 앉아 찻물과 다구를 받아 직접 우려 마시는 구조라, 메뉴 못지않게 어떤 차를 어떤 다구로 내는지를 보는 재미가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교동다원은 백 년 가까운 한옥을 고쳐 쓴 찻집으로, 본채는 좌식 방, 별관은 입식 자리로 나뉩니다. 간판 메뉴는 직접 제다해 십 년 넘게 숙성시킨 발효차 황차로, 녹차와 비슷한 모양이지만 한 번 더 건조를 거쳐 떫고 쌉싸름한 기운이 줄고 노란빛이 돌며 구수한 향미가 납니다. 황차 외에 동방미인·기문홍차 밀크티 같은 차도 함께 냅니다. 다호 같은 집은 쌍화차와 대추탕처럼 약재를 달인 따뜻한 차가 인기 메뉴입니다.

찻집을 고를 때는 다음을 살펴보면 선택이 쉬워집니다.

  • 차의 계열 — 녹차·백차·청차·홍차처럼 발효 정도로 나뉘는 차를 갖춘 곳인지, 솔잎차·국화차·대추차·쌍화차처럼 약재와 꽃을 우린 전통차 위주인지 확인합니다. 발효차를 맛보고 싶다면 황차나 홍차를 내는 집을, 몸을 데우는 보양 한 잔을 원하면 쌍화차·대추탕을 내는 집을 고르면 됩니다.
  • 우리는 방식 — 찻물과 다구를 내어주고 직접 우려 마시게 하는 다도형인지, 완성된 차를 잔에 담아 내는 형태인지에 따라 머무는 시간이 달라집니다. 다도형은 첫 탕부터 여러 탕을 우리며 같은 잎에서 맛이 바뀌는 과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 자리 형태 — 온돌 좌식방, 마루, 마당 쪽 자리 중 어디에 앉느냐에 따라 시야와 채광이 달라지니 들어가기 전에 내부를 한 번 둘러봅니다.

차와 함께 곁들이는 다식(약과·한과·떡류)을 내는 집도 많아, 단맛이 강하지 않은 전통 간식과 차를 짝지어 맛보는 것도 한옥마을 찻집의 묘미입니다. 양갱이나 한과를 함께 내는 집이라면 황차 같은 발효차와 단맛을 번갈아 즐기기 좋습니다. 차를 본격적으로 배워보고 싶다면 한옥마을 안의 전주전통문화연수원에서 운영하는 다례 체험처럼 차를 우리고 권하는 예법을 짧게 익혀볼 수 있는 프로그램을 찾아보는 것도 방법입니다. 운영 일정과 접수 방식은 시기에 따라 바뀌고 찻집마다 정기 휴무가 있으니(이를테면 교동다원은 화요일에 쉽니다) 방문 전에 미리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전주 남부시장 야시장 먹거리 타운

남부시장은 한옥마을 바로 곁에 붙어 있는 전통시장으로, 1905년 공설시장으로 문을 연 이래 주단·건어물·채소·과일·약재를 다루는 800여 점포가 들어선 큰 시장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낮의 시장과 저녁의 야시장, 그리고 6동 2층 청년몰이 한 시장 안에서 시간대를 나눠 돌아갑니다. 야시장은 보통 금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열리며, 여름철에는 대체로 저녁 6시 무렵부터 자정까지, 겨울철에는 좀 더 이른 저녁부터 밤까지 운영합니다. 약 250m 길이의 시장 통로를 따라 마흔다섯 개 안팎의 이동식 매대가 줄지어 들어서고 그 가운데 상당수가 즉석에서 구워 파는 먹거리 매대로 채워집니다. 정확한 운영 요일과 시간은 계절·행사에 따라 달라지고 연장 운영하는 날도 있으니, 방문 전 확인이 안전합니다.

야시장의 간판 먹거리는 육전입니다. 본래 소고기를 얇게 저며 달걀물을 입혀 부친 전이지만, 야시장 매대에서는 한돈(돼지고기)을 얇게 저며 부치는 집도 많습니다. 어느 쪽이든 부치는 철판 앞에서 바로 받아 따뜻할 때 먹는 것이 가장 맛있고, 여기에 앞서 소개한 모주를 한 잔 곁들이면 전주식 조합이 완성됩니다. 육전 말고도 나무젓가락에 낙지를 말아 토치로 굽는 낙지호롱(낙지꼬치), 한입 크기로 쥔 소고기불초밥, 군용 식판에 담아 내는 햄버거와 철판스테이크, 베트남 쌀국수와 라오스식 만두(사구) 같은 이국 음식, 그리고 남부시장 터줏대감인 피순대집과 콩나물국밥집까지 한 통로 안에 섞여 있습니다. 매대를 고를 때는 줄이 길게 선 집, 재료를 그 자리에서 굽는 집, 현지 손님이 자리를 잡고 먹는 집을 기준으로 삼으면 실패가 적습니다. 한 접시가 대체로 삼사천 원에서 오천 원 안팎이라 여러 매대를 조금씩 맛보며 도는 방식이 잘 맞습니다.

6동 2층 청년몰은 야시장과 운영 시간이 다릅니다. 젊은 상인들이 꾸린 카페·음식점·소품 가게와 작가 공방이 좁은 복도를 따라 모여 있고, 야시장이 열리지 않는 평일에도 문을 여는 점포가 많아 한옥마을 일정과 묶어 들르기 좋습니다. 다만 점포마다 영업시간과 휴무가 제각각이라, 특정 가게를 목적지로 삼았다면 영업 여부를 미리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동선은 낮 시장 구경 → 청년몰 카페·공방 → 해 질 무렵 야시장 매대 순으로 잡으면 시간대별 장점을 모두 챙길 수 있습니다. 콩나물국밥과 모주로 아침을 열고, 경기전과 향교를 둘러본 뒤 한옥마을 찻집에서 한낮의 황차 한 잔으로 쉬어가고, 저녁 남부시장 야시장에서 육전과 모주로 마무리하는 하루가 전주 미식 여행의 기본 골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