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간대를 밟는 길, 서울 고가에서 경주 고분과 부산 산비탈까지







서울에서 출발해 신라 천년의 고도 경주를 지나 항구 도시 부산까지 내려가는 한반도 동남쪽 종단길에는, 도심 고가도로를 보행로로 되살린 공중 산책로, 신라 왕족이 잠든 흙무덤 정원, 비탈을 따라 집이 층층이 들어선 계단 마을이 차례로 놓여 있습니다. 세 장소는 각각 20세기 도시 인프라의 재생, 5세기 전후 신라의 무덤 양식, 6·25 피란 시대의 주거 형태를 담고 있어, 한 번의 동선 안에서 1970년대 콘크리트 고가, 1,500년 전 적석목곽분, 1950년대 산비탈 판잣집이라는 세 시간대를 차례로 밟게 됩니다. 서울역에서 KTX를 타면 신경주역까지, 다시 부산역까지 철길 하나로 이어지는 구간이고, 첫 장소인 서울로 7017이 바로 그 서울역 위에서 시작되므로 출발과 동시에 동선이 자연스럽게 열립니다. 경주는 신경주역에서 시내까지 버스나 택시로 갈아타고, 부산 감천문화마을은 부산역에서 지하철과 마을버스로 닿는 구조라, 세 도시를 잇는 큰 줄기를 철도가 받쳐 줍니다.
서울로 7017 공중정원
서울역 선로 위를 가로지르던 1970년대 차량용 고가도로를 보행 전용 녹지로 바꾼 길입니다. 이름의 '7017'은 고가가 처음 준공된 1970년과 보행길로 다시 태어난 2017년, 고가의 높이 17m, 그리고 주변으로 뻗어 나가는 17개의 보행 연결로를 한 숫자에 겹쳐 담은 것입니다. '서울로' 또한 '서울을 대표하는 사람 길'과 '서울로 향하는 길'이라는 두 뜻을 포갠 이름입니다. 설계는 네덜란드 건축 그룹 MVRDV가 맡았고, 차도를 걷어내 보행길로 다시 연 것은 2017년 5월입니다. 전체 길이는 약 1,024m, 폭은 10m 안팎이며, 서울역 본선 위를 지나는 구간과 회현역 방향 지상 구간으로 나뉩니다. 콘크리트 차도였던 상판 위에 원형 화분을 줄지어 놓고 그 안에 나무와 풀을 심어, 도로의 골격은 그대로 두고 식재만 얹은 구조가 핵심입니다.
가장 눈여겨볼 점은 식물을 늘어놓은 방식입니다. 50과 228종, 2만 4천여 그루의 수목과 초화를 645개의 둥근 화분에 나눠 심고, 이를 학명 가나다 순으로 배열했습니다. 그래서 회현역 쪽 시작점의 구기자나무에서 만리재 종점의 회양목까지 걷는 동안, 식물도감을 한 장씩 넘기듯 같은 과(科)의 식물이 모였다 흩어집니다. 화분은 크고 작은 형태로 다양하게 짜였는데, 가장 큰 것은 지름이 어른 여럿이 팔을 벌려야 감쌀 정도로 넓어 그 안에 키 큰 나무를 통째로 품습니다. 화분마다 수종 이름표가 붙어 있어 걸음을 멈추고 종을 확인하기 좋고, 잎·꽃·열매·단풍을 철 따라 볼 수 있도록 수목을 고른 점, 상록수가 섞여 겨울에도 초록 잎이 남는 점이 함께 보입니다. 화분의 높이와 지름이 제각각이라 같은 줄에서도 시선의 높이가 오르내리고, 콘크리트로 둥글게 빚은 화분 자체가 의자이자 난간을 겸하도록 만들어져 식재 단지와 보행로와 휴게 시설이 한 덩어리로 붙어 있습니다.
걷다 보면 신을 벗고 발을 담그는 족욕 형태의 공중 쉼터, 목련무대와 장미무대처럼 식물 이름을 붙인 작은 무대, 어린이를 위한 트램펄린 같은 체험 시설이 화분 사이사이에 끼어 있어, 지나가기만 하는 길이 아니라 앉아 머무는 길로 쓰입니다. 상판 양옆으로는 서울역 철로, 남대문 방향 고층 건물, 만리동 일대의 낮은 주택가가 차례로 내려다보이고, 본선을 따라가다 만리동광장 쪽으로 내려서면 광장 화단과 손기정공원 방향으로 동선을 연장할 수 있습니다. 17개 연결로는 6개 권역으로 갈라져 남산육교, 서울스퀘어, 버스환승센터, 그리고 옛 서울역 역사를 고친 문화역서울284로 이어지고, 퇴계로 쪽 연결로는 지하철 4호선 회현역 5번 출구와 곧장 닿습니다. 회현역 방향으로 빠지면 그대로 남대문시장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고가 본선만 끊김 없이 걷고 싶다면 회현역 4·5번 출구에서 출발해 만리재 방향으로 한 줄기로 걷는 편이 길을 잇기에 좋습니다. 화분에 붙은 콘크리트 의자에 앉아 발치의 식재를 가까이 들여다보면, 같은 종이라도 화분의 위치와 햇빛이 닿는 방향에 따라 가지가 뻗은 모양이 다른 것을 살필 수 있습니다.
경주 대릉원 고분군
대릉원은 약 12만 6천여㎡ 부지에 신라 시대 고분 23기가 모여 있는 왕족·귀족 무덤군으로, 경주 시내 한복판에 자리합니다. 무덤군의 이름은 《삼국사기》에 미추왕을 '대릉(大陵)'에 장사 지냈다는 기록에서 따온 것으로, 왕과 왕비, 귀족의 무덤이 한자리에 모인 능원이라는 뜻을 담습니다. 봉긋한 흙무덤들이 잔디 능선처럼 겹쳐 이어지고, 그 사이를 흙길과 잔디밭이 잇고 있어 무덤과 무덤 사이를 천천히 걸어 돌아볼 수 있습니다. 동선은 정문에서 들어가 천마총을 먼저 본 뒤 황남대총과 미추왕릉을 차례로 도는 순서가 자연스럽습니다.
먼저 천마총부터 보시길 권합니다. 23기 가운데 내부를 공개하는 거의 유일한 무덤으로, 과거에는 '경주 155호분'으로 불리다가 1973년 발굴 뒤 출토품인 천마도에서 이름을 따왔습니다. 지름 약 47m·높이 약 12.7m의 봉분 속을 들여다보며, 나무로 짠 덧널 위에 냇돌을 두껍게 쌓고 다시 흙을 덮은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의 단면 구조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양식은 도굴이 어려운 대신 세월이 흐르면 천장이 내려앉는 구조라, 부장품이 고스란히 남은 채 발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천마총에서는 금관과 금제 허리띠를 비롯해 1만 1천여 점이 넘는 부장품이 쏟아졌고, 부장품 궤짝에 쌓인 말갖춤을 들어 올리자 그 아래에서 천마도가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천마도는 말이 달릴 때 흙이 튀는 것을 막으려고 안장 양옆에 늘어뜨린 말다래에 그린 그림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여러 겹 겹친 바탕 위에 갈기를 세우고 하늘을 나는 흰 말을 그렸으며, 지금까지 전하는 신라의 회화 유물로 꼽힙니다. 전시실에서는 봉분을 잘라 보여 주는 발굴 단면과 금관·천마도 복제품을 함께 진열해, 돌무지와 덧널, 부장품의 자리를 순서대로 짚어 볼 수 있습니다.
이어 두 봉분이 표주박처럼 남북으로 맞붙은 황남대총은 경주에서 가장 큰 고분으로, 남북 길이 약 120m, 동서 약 80m, 높이가 20m를 넘는 거대한 쌍분입니다. 남분과 북분이 따로 주인을 둔 형태를 그대로 드러내는데, 발굴에서 북분은 금관과 '부인대(夫人帶)'라 새긴 허리띠가 나와 여성의 무덤으로, 남분은 무기류 위주의 부장품이 나와 남성의 무덤으로 추정되며, 두 무덤을 합쳐 5만 점이 넘는 유물이 출토되었습니다. 신라 제13대 임금의 무덤으로 전하는 미추왕릉은 김알지의 후손이자 경주 김씨 가운데 처음 왕위에 오른 미추 이사금을 모신 곳으로, 지름이 50m를 웃돌고 다른 봉분과 달리 담장을 둘러 능역을 따로 갖추고 있습니다. 그래서 봉분의 크기와 배치, 울타리의 유무로 묻힌 사람의 위계를 가늠하던 신라 무덤의 규칙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고분과 고분 사이에 홀로 선 목련나무 한 그루는 봄이면 봉분 곡선을 배경으로 사진을 담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는 자리이고, 미추왕릉 담장 둘레로는 봄철 벚꽃이 피어 또 다른 촬영 지점이 됩니다.
무덤군을 한 바퀴 돈 뒤에는 대릉원 둘레를 감싸는 돌담길을 걸어 보세요. 후문 인근 황남빵 매장 건너편에서 시작해 돌담을 따라 약 550m를 가면 정문에 닿습니다. 정문을 나서면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천문 관측대로 꼽히며 1,300년 넘게 자리를 지켜 온 국보 첨성대가 들판 한가운데 서 있고, 우물 정(井) 자로 짠 윗단과 둥근 몸통, 가운데 네모난 창의 단 쌓기를 가까이서 셀 수 있습니다. 신라 별궁 터인 동궁과 월지(옛 안압지), 한옥과 카페가 늘어선 황리단길도 모두 도보권에 있어 다음 동선으로 걸어서 이어 가기 좋습니다. 동궁과 월지는 해가 진 뒤 못에 비친 누각의 반영을 보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라, 낮의 고분 산책과 저녁의 못가 산책을 하루에 나눠 담기에 좋습니다.
부산 감천문화마을
감천문화마을은 부산 사하구 감천동, 6·25 전쟁기에 형성된 산비탈 주거지입니다. 1950년대에 태극도라는 신흥 종교의 신도 수천 명이 지금의 감천2동 일대로 집단 이주해 신앙촌을 이루었고, 여기에 전국에서 밀려든 피란민이 더해지면서 경사면을 따라 집이 층층이 들어선 계단식 마을이 자리 잡았습니다. 마을이 한때 태극도 마을·태극도 신앙촌으로 불린 내력이 여기서 나오며, 지금도 마을 안에는 태극도 본부가 남아 있습니다. 뒷집의 조망을 가리지 않도록 앞집의 높이를 낮춰 지은 까닭에, 맞은편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색색의 지붕이 비탈을 계단처럼 메운 모습이 펼쳐집니다. 이 계단식 경관 때문에 '한국의 마추픽추', '한국의 산토리니'라는 별칭이 붙었고, 골목과 골목이 미로처럼 얽힌 점도 함께 거론됩니다.
낙후되어 가던 산동네에 '문화'라는 이름이 끼어든 것은 2009년부터입니다. 그해 동서대 디자인 전공 학생들이 골목 벽화를 그리기 시작했고, 사하구의 지원을 받아 그해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 '꿈꾸는 부산의 마추픽추'에 선정되면서 작가와 주민, 학생이 함께 빈집과 골목 벽을 벽화와 조형물로 단장했습니다. 빈집은 갤러리와 공방, 게스트하우스로 고쳐 쓰였고, 그 가운데 폐가를 리모델링한 감내어울터 같은 공간은 마을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숙소로도 쓰입니다. 마을을 대표하는 포토존은 골목 끝 난간에 나란히 앉아 마을을 내려다보는 '어린 왕자와 사막여우' 조형물입니다. 지구별에 온 어린 왕자가 사막여우와 잠시 쉬는 장면을 본떠 만든 작품으로, 두 조형물의 등 뒤로 계단식 가옥 전경이 그대로 펼쳐져 인물과 마을 풍경을 한 화면에 담을 수 있어 가장 붐비는 자리입니다.
마을을 처음 도는 분께는 안내소에서 파는 지도를 들고 골목 곳곳의 도장을 찍어 모으는 스탬프 투어를 권합니다. 정해진 지점을 차례로 찾아가는 사이, 큰길에서는 지나치기 쉬운 갤러리와 전망 지점을 자연스럽게 거치게 되어 미로 같은 길에서 방향을 잡는 길잡이가 됩니다. 마을을 볼 때는 큰길보다 폭이 한 사람 남짓한 골목으로 들어가 보세요. 골목을 걸으며 살필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 외벽마다 다른 페인트 색과 손으로 쓴 옛 간판
- 계단 옹벽에 그려진 물고기 벽화와 작은 부조 작품
- 좁은 틈으로 떨어지는 계단의 단차와 집과 집 사이 손바닥만 한 마당
- 골목 곳곳에 들어선 작은 갤러리와 공방, 도장 찍기 스탬프 지점
이 요소들을 따라가면 마을이 어떻게 비탈의 등고선에 맞춰 지어졌는지가 보입니다. 갈림길마다 세워진 안내 표지와 골목 지도를 참고하면 어린 왕자 조형물, 전망 지점, 갤러리로 이어지는 경로를 짚어 갈 수 있습니다. 비탈을 오르내리는 계단 구간이 많으니 걷기 편한 신발이 도움이 되고, 골목 안쪽은 여전히 주민이 생활하는 공간이므로 창문과 마당을 들여다보지 않는 배려가 필요합니다.